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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한 잔에...

by 루이보스 스타 2008. 11. 4.

한껏 부푼 마음이 사그러질 때

그때의 쓰라림은 소주 한 잔과 같습니다.

입가에 스치는 진한 알콜향이

내 얼굴과 마음을 찌푸리게 합니다.

 

끝은 아니겠지 여기가 종착역은 아니겠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소주 한 잔을 가득 채워놓습니다.

이젠 눈물도 다 말라버리고

심장의 열정도 식어버리고

내게 남은 것은 늙어가는 몸뚱아리와 끝없는 욕망과 환상이 전부였습니다.

 

연거푸 술 잔을 들이키다보면

속은 연신 내게 칼질을 해댑니다.

소릴 지르고 칼로 찔러도 나는 마땅히 그래야하거늘 하면서

또 한 잔을 가득 채웁니다.

 

여기까지인가 결국엔 여기까지인가

뛴다고 뛰어보고 무릎이 까지도록 기어보기도 했지만,

결국엔 아무것도 남지 않은 껍데기 뿐이었습니다.

 

타들어가는 입속에 젓가락으로 안주를 가득 집어 넣고

침묵으로 세상에 협박하는 것처럼 인상을 쓰고 있습니다.

아무도 봐주는 이가 없어도 혼자 미친 척 술을 마십니다.

 

언제부턴가 수많은 자리를 채우던 이들이 하나둘씩

떠나가고 있습니다. 그들은 그들만의 보금자리를 만들어가며

이 안개속에서 불을 지피고 있습니다.

그런데, 나는 술잔에 술만 가득 채울 뿐입니다.

 

한동안 그렇게 퍼마시다가 문득 소주의 쓰디쓴 맛에

지금의 나를 다시 보게 됩니다.

일어나지 말아야할 일들을 내가 만들어가고 있다는 느낌에 사로잡혀

두 눈까지 멀어가고 있는 것을 깨닫습니다.

시간이 부족하다는 깨달음이 다가왔고, 그때부터 술잔과 술병을 들고 달려나갑니다.

 

문밖에 서성거리는 네온사인과 자동차 경적소리가 또다시 요란하게 나를 흔들어놓습니다.

TV는 인간의 정신을 빨아먹고 돈은 인간의 모든 것을 팔아먹습니다.

들고 있는 술잔과 술병은 다시 내게 술을 건네고 있습니다.

부족할 것 없는 것은 이 세상이고,

너무 많이 부족한 것은 세상에 제대로 들어가지 못하는 나이니까.

나는 그렇게 소주 한 잔 마시고 인상을 찌푸립니다.

 

모든 것은 그렇게 애처롭게 살아가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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