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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동강사진박물관, 고씨굴, 라디오스타, 청령포, 선돌(영월) - 혼자만의 시간

by 루이보스 스타 2008. 8. 21.

 

동강사진박물관

 

영월을 처음 찾은 곳은 사진박물관이었다.

처음엔 어디를 가야할지 몰라서 이리저리 허둥대다가 영월시 입구쪽에 있는 박물관에 무작정 들어갔다.

약간 고지대에 있었는데, 바로 옆에 영월군청도 있었다. 넓은 주차장을 갖고 있어서 편하긴 했다.

물론 이른 아침에 박물관을 오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래도 여행객들이 조금은 있었다.

주변의 경치가 영월이 어떤 곳인지 조금은 보여주는 듯 했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볼 수 있어서 영월의 시가지가 전부 보였다.

아주 작았다.

 

 

사진박물관 안에 전시된 사진기

 

여기는 추억의 공간이다.

어릴 적 봤던 사진기들도 있고, 더 옛날 사진기들도 보였다.

사진박물관에 들어서서 처음으로 보는 게 사진기다.

그 외에는 너무나 많은 글 때문에 대충 보았다.

조용한 분위기에 2층으로 전시된 전시실 등이 전부였다.

소규모였지만, 나름 괜찮았다.

입장료도 줬던 것 같은데 잘 기억이 안난다.

2층으로 올라가면 전시되어 있는 많은 사진들을 만날 수 있었다.

어느 사진 작가의 특이한 사진들도 볼 수 있었다.

인형에게 폼 잡게 한 다음 철거되는 마을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들이었다.

전에 매그넘 사진전에 갔었는데, 그 때의 느낌과는 많이 틀렸다.

나에게 느낌이 제대로 전달되지 못해서 일까...

나는 오히려 바깥이 더 좋았다.

영월이 보이는 풍경이 더 좋았다.

 

 

동강에서 래프팅하는 곳

 

다음으로 찾은 곳이 어라연계곡이다. 그런데, 한참을 가고 가도 계곡이 보이질 않았다. 주차장이 보여서 주차를 하고 눈을 요리조리 돌려가며 찾아봐도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조금 더 차를 몰고 갔어야 했나보다. 굽이쳐 흐르는 어라연이 보고 싶었는데, 보지 못한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 멍으로 가슴에 남는다. 수많은 사람들이 래프팅을 하러 여기를 찾고 있었다. 학생들부터 어른들까지 모두가 물에 흠뻑 적신 채로 얼굴에 웃음을 띤다. 밝은 표정이 살아있는 곳이라고 해야하나. 나도 다음에 지인들과 이 곳을 찾고 싶은 마음이 나도 모르게 솟아나고 있었다.

그러게 부러운 마음을 가슴에 담고 몇 장의 사진을 남긴 다음에 나는 다른 곳으로 출발해야했다.

왜냐하면 나는 이 곳에서 혼자 더 남길만한 것들이 없기 때문이었다.

 

 

고씨동굴과 연결된 다리

 

고씨동굴이라는 곳이 있다고 관광지도는 내게 말했다. 여러 군데를 고민해본 결과 이곳으로 가기로 했다. 그런데, 막상 도착하니 조금씩 후회가 밀려오기 시작했다. 내가 혼자 왜 굴에 들어가야하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게다가 굴은 어두워서 사진찍기도 힘들기 때문이다.

전문가용 사진기는 아니지만, 그래도 오래 들고 있으면 손에 무리가 오기 때문이다. 나는 오히려 이곳이 굴보다는 입구와 다리 쪽에서 큰 매력을 느꼈다. 그늘이 진 다리는 뜨거운 햇살을 피해 어울림을 보여주고 있었다.

 

 

 

 

 

고씨동굴 입장 후 헬멧쓰고...

 

고씨동굴 입구에 들어서니 시원한 바람이 나에게서 더위를 쫓아주었다. 어지럽게 생긴 굴을 지나니 양쪽으로 헬멧 진열대가 보였다.

한쪽에선 이미 들어간 사람들이 쓰고 갔는지 텅 비어 있었고, 다른 한 쪽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여기를 혼자 온 사람은 나 뿐이었다.

나는 그냥 무덤덤하게 서 있었다. 이런 시선에 익숙해져야하기 때문이다. 혼자 이리저리 둘러보았는데, 안으로 들어가면 더 어두울 것 같아서 카메라를 높이 들고 사진을 한 장 찍었다. ISO를 1600까지 높였기 때문에 그나마 사진은 확보가 될 수 있었다. 나의 시선은 저 어두운 안쪽 보다는 사람들을 향하기 시작했다. 아이들과 함께 여행을 나온 가족들이 보였고, 커플들도 보였다. 혼자는 나 뿐이었지만, 나는 꿋꿋히 참고 견뎌냈다. 외로움을 많이 타는 성격 때문에 일부러 혼자 여행을 온 것이다. 고쳐봐야지란 생각이 계속 들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는 건 있나보다. 여기 온 사람들은 모두 밝은 표정들이었다. 아이들은 장난기가 가득하고 이리저리 뛰어다니기 일쑤였다. 커플들은 서로 손을 잡아주며 사진찍어주고 분위기를 무릇 잡아가고 있었다.

 

 

영화 '라디오 스타'에 나오는 철길건널목

 

고씨동굴을 나오니 카메라 렌즈에 습기가 차서 찍을 수가 없었다. 내 온 몸은 땀과 100%의 습도로 인해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나는 빨리 이 곳을 벗어나서 숙소를 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짐을 꾸리고 차를 몰아서 시내로 향했다. 시내에 들어오니 제일 먼저 나를 반기는 것이 바로 라디오 스타에 나오는 철길건널목이었다. 주인공 둘이 이 철길을 지나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 곳이었다. 그리고 그 뒤를 따라오는 노브레인이 생각난다. 연기는 무시하고 무턱대로 들이대는 그들을 처음엔 안좋은 시선으로 보다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면서 무척이나 그들이 좋아졌다. 신나는 노래가 사뭇 가슴에 와닿았다. 마치 정말 시골에서 미친듯이 노래만 하는 청년들로 보이기 시작했다. 라디오 스타에 나오는 명장소는 2~3군데가 된다. 하나는 방송국이고, 또 하나는 바로 밥먹었던 곳이다. 집나간 아빠를 기다리던 할매와 손자가 운영하던 바로 그 가게다. 꼭 가보고 싶었지만, 늦게 생각나는 바람에 가질 못했다. 다음에 영월을 들리게 되면 그러한 곳들을 찾아가고 싶다. 조금 더 여유있게 영월을 돌아보고 싶다. 너무 급하게 이곳저곳 다 볼려는 마음에 돌아다니게 되니 정녕 기억에 남는 것은 잊어버린 거울조각들 뿐이다.

 

 

영월대교 공사중

 

해는 뉘엿뉘엿 저무는데 다리 건너편에는 공사중이다. 영월대교가 정확히 맞는 것인지 기억은 안나지만, 그래도 꽤 큰 다리를 짓고 있었다. 저 다리가 완성되면 이 곳은 조금 더 운치있고 아름다운 곳이 될 것 같다. 어두컴컴해지는 밤에도 영월은 큰 매력을 갖는다. 바로 과거의 흔적들을 여기서 찾을 수가 있어서다. 내가 어릴 적 볼 수 있었던 바로 그 장면들이 여기에서 스쳐지나간다. 낡은 건물들과 주변 풍경들, 발전하고는 조금 거리가 있는 모습들, 조용하고 작고 정말 작은 소도시 같은 그런 느낌들이 아직도 지워지지 않는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이 곳도 크게 변할 것 같다. 주변에는 모텔들이 들어서고 이곳저곳 공사가 한창이다. 언젠가 1~2층 건물들이 철거되고 높은 건물들로 이 곳을 애워쌀지도 모른다. 나는 지금 이 모습이 더욱 좋은 데 말이다. 옹기종기 모여 조금만 걸어도 끝에서 끝까지 갈 수 있는 그런 아담한 곳을 그리워한다. 너무 북적북적 대는 곳에서 살아서 그런지 모르겠다. 영월은 영원한 달처럼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온갖 향수를 뿌려대는 이곳을 나는 지금 그리워한다.

 

 

청령포

 

첫날에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청령포까지 갔다. 시내에서 별로 멀지 않은 곳이다. 시내를 조금만 벗어나면 이 곳으로 갈 수가 있다. 청령포가 처음엔 뭔지 몰랐다. 그저 유명한가보다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가서 안내문을 읽어보니 이 곳은 단종이 유배된 곳이었다. 3면이 강으로 둘러쌓여 있으며, 뒤로는 험한 절벽이 가로막아 천혜의 감옥이었다. 홍수로 인해 단종의 거처가 옮겨지기 전까지 여기에 있었다고 한다. 소나무숲으로 둘러쌓여 있으며, 곳곳에 단종의 아픔이 서려있는 곳이라고 한다. 내가 도착했을 때에는 6시가 넘었었다. 그래서 이미 마지막 관광객을 태운 배는 청령포에 정박해 있어서 멀리서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눈여겨 보니 소나무숲 안으로 한옥이 보인다. 저 곳에 갇혀 젊은 날을 보냈다니...나는 저 곳에 들어가지 못한 아쉬움을 뒤로 하고 다시 걸음을 옮겼다.

 

 

선돌

 

영월에 도착한 시간이 오후쯤 되어서 나는 반나절밖에 시간이 없었다. 차가 너무 막히는 바람에 계획대로 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숙소를 찾기 전 가본 곳이 바로 선돌이다. 안내지도에는 선돌이 정말 멋있게 나와있다. 나도 그 매력에 빠져서 꼭 가보고 싶었다. 차로 구불구불 올라가다보니 휴게소 비슷한 곳이 있었다. 이젠 손님이 뜸한지 장사하시는 분이 뒷정리를 하고 있었다. 나는 해가 지기 전에 빨리 보고 내려가야겠다는 생각에 차에서 내리자마자 뛰기 시작했다. 솔직히 어두워지니까 무섭기도 했다. 선돌을 보기 위해서는 약간 우거진 숲을 지나야하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멀지 않은 곳에 선돌이 보였다. 선돌엔 어느 전설이 전해진다고 하는데 지금은 기억이 안난다. 선돌을 보고 있으면 마치 신이 수도치기 해서 생긴 것처럼 보인다. 깍아지른 절벽을 보면 아찔하다. 높은 곳에서 멀리보면 괜찮은데 아래를 보면 정말 어지럽다.

전망대에 도착해서 보니 정말 멋지다. 저 멀리 산들이 겹쳐보이는 것부터 강을 따라 해가 지는 모습을 보니 움직이기가 싫었다. 솔직히 혼자만 아니었으면, 죽치고 해질때까지 사진 찍으면서 분위기도 느껴보고 싶었다. 하지만, 주위에 아무도 없고, 새소리 벌레소리만 들려오니 꺼림칙해서 일찍 자리를 뜨고 싶었다. 다만 선돌에 대한 구도가 몇개 나오지 않아서 이리저리 방황하다가 반대편에 해 떨어지는 것을 찍고 돌아왔다. 장관이었다. 정말 기분 좋은 경치였다. 아름다웠고, 평화로웠다. 딱히 뭔가가 있어서가 아닌 그저 있기 때문에 좋은 그런 느낌이었다.

그리고, '라디오 스타'의 주인공들이 머물렀던 모텔에 투숙해서 나름 분위기를 느끼며 밤이 되길 기다렸다. 밤이 되고 나는 카메라와 삼각대를 챙긴 후 다시 숙소를 나섰다. 영월엔 천문대도 있었다. 예약이 꽉 차서 새로움을 느낄 순 없었지만, 밤하늘의 수많은 별들이 내게 인사를 했다. 나는 고개를 뒤로 젖히고 이름도 모르는 별들을 보며 마음으로 대화하기 시작했다. 정말 오랜만에 보는 별이다. 저렇게 많은 별들을 도대체 몇년만에 다시 보는지 모르겠다. 마치 어릴 적부터 잊고 있었던 것을 찾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나는 영월의 야경과 하늘의 별을 뒤로 하고 아쉬운 걸음을 옮기고 내려왔다. 영월은 다시 한 번 가고 싶은 나에게는 그곳이 되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