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정치는 이성적인 것이 아니라 감성적으로 변할 것이다.
인류에게 큰 역사가 쳇바퀴처럼 굴러간다면 민주주의가 마지막일 것이다.
그리고 그 민주주의의 끝이 바로 감성적인 정치이다.
누가 뭐래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이성적인 민주주의에서 지금 우리나라는 감성적인 민주주의로 흐르고 있다.
왜냐하면 언론을 조작하는 것으로부터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이성적인 것이 가장 현실적이기는 하지만, 인간이 바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마치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꿈꿔왔던 그 모든 것이 잘못되었음을 느낄 때 세상은 조금씩 변하기 시작한다.
영원한 것은 없다.
경제도 정치도 자유도 정신도 영혼도 영원이란 없다.
나라의 기본적인 발전을 위해 이성적인 판단을 한다고 하면 시간이 흐를수록 아닌 건 아니다.
손해를 봐도 어쩔 수 없다. 갈수록 감정적인 판단으로 스스로의 삶과 정치의 흐름을 정하는 것이다.
언론이란 것도 하나의 감성적인 호소라고 본다.
사람의 가장 약한 점이기도 하며 순수한 면이기도 한 감성을 자극하여 우리 삶의 흐름을 바꾸는 것이다.
이제 조금씩 감성적인 세상이 시작되는 것 같다.
90년대까진 아주 이성적으로 사리판단하던 사람들이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옳고 그름을 나누기 시작했고,
정치의 선을 끗기 시작했다.
국민을 흔들리게 하는 정치가 앞으로의 미래다.
일부러 언론을 조작하여 만드는 여론이 아닌(세상엔 비밀이 없다. 결국엔 들킬 것을..) 있는 것을 조금 포장하여
사람으로써 감정이 북받치도록 만드는 정치가 바로 미래 정치이다.
내가 한국 사람이기에 그렇게 생각할지도 모르나.
뉴스나 신문에서 나오는 것을 보면 갈수록 감정적인 대립이 심해지고 있는 것을 느낀다.
정말 이성적으로 판단하며 일처리하는 것이 생각보다 줄어들고 있음을 느낀다.
알게 모르게 그런 일들이 많이 일어나는 것이다.
앞으로는 정치인은 선거날에 자신을 뽑아달라는 방법을 달리할 것이다.
그저 번호만 외치거나 이름만 외치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귀를 기울일 수 밖에 없는 그런 말들을 내뱉는 것이다.
그것도 큰 소리가 아닌 누구나 신경쓰이게 들을 수 있을 정도가 아닌 그런 톤으로 대화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정치 구도를 자신의 삶으로 끌어들인 다음에 호소를 할 것이다.
지금 세상이 얼마나 잘못되어가고 있고 누구는 피해를 얼마나 입었고 그래서 더욱 살기 어려워졌다는 등의 얘기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런 세상을 나는 바꾸려고 도전하고 있다며 눈물 어린 호소를 할 것이다.
누구나 공감이 가고 이해가 가는 얘기를 한다면 강남의 그 호사스러운 인간들도 조금씩 넘어올 것이다.
이성을 움직이는 것이 아닌 앞으로는 감정을 움직일 수 있는 자가 가장 높은 곳에 오르고 세상 위에 설 것이다.
이성은 감성으로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을 가지지 못한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에 불과하다.
정치도 뉴스도 신문도 친구도 가족도 모두 감성적인 것으로 변모되어 가며 쉽게 상처받고 아파하고 공격할 것이다.
시간이 많이 흐른 뒤엔 그 감성이 공격성으로 바뀌어 다시금 우리를 공격할지도 모른다.
내 생각이 그렇다.
나의 상상이 그렇다.
무디고 무딘 나도 조금씩 세상이 바뀌는 걸 느끼는데, 하물며 다른 이들을 이러한 세상을 낙관만 하고 있을까.
그저 술에 취해 답이 풀리기 시작한다. 그것을 옮겨 적는다.
세상은 빛처럼 어둡고 그림자처럼 밝은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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