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선관을 지나니 바로 대흥사로 가는 길이 보였다.
천천히 걸음을 옮겼는데 별로 멀리 있어 보이지 않았다.
걸음을 옮기는데, 약수터가 보였다.
나무아미타불이란 글씨가 무척 인상 깊었다.
날씨가 흐려서인지 분위기가 묵직했다.
안개가 산을 덮어서인지 마치 산새에 갇혀버린 듯 하다.
계곡을 건너가는 다리가 짙은 역사를 보여주는 느낌이다.
바로 코앞인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조금 더 걸어갔다.
그렇게 걸어가니 탁 트인 공간이 나타났다.
그 넓은 공간에 사찰들이 세워져 있었다.
한적함이 가장 크게 와닿았다.
깊은 산속에 넓은 공간을 떡하니 차지하고 있으며, 수행하는 공간이 생각보다 크게 자리잡고 있어서
주변의 고요함이 다 그곳으로부터 나오는 것 같았다.
주변의 산들은 병풍처럼 절을 둘러싸고 있었다.
입구에는 뒤로 보이는 산이 부처가 누워있는 형상이라고 설명해주고 있었는데,
아무리봐도 잘 모르겠다.
처음에 맞게 되는 탁 트인 공터가 마음을 훤하게 터놓는다.
그리고 우측엔 연못이 하나 있는데, 아주 작고 아담하다.
좌측엔 큰 종이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입구부터 이렇게 탁 트인 공간을 가지고 있는 곳은 처음인 것 같다.
저녁부터 비가 온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의 행렬이 많지 않았다.
너무나 조용했다. 주변의 사람들의 발자국소리까지 들릴정도로 아주 낯선 느낌이었다.
나는 혼자 신이나서 사진을 찍고 다녔다. 일행과는 조금 떨어져서 사진을 찍었다.
여기저기 들어가보려하면 수행중이라는 팻말이 있어서 감히 발을 들여놓지 못했다.
너무나 엄숙한 분위기가 사람을 압도했다.
넓은 공간에 우두커니 있는 탑과 사찰은 어두운 날씨로 인하여 더욱 고풍의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이리저리 둘러보니 이 곳에 박물관이 있었다.
대흥사와 관련된 박물관이 조성이 되어 사람들의 관람을 유도하고 있었다.
그리고 여기저기 건축중인 건물도 보였다.
다른 생각은 별로 들지 않았다. 여기도 꽤 많이 벌어서 쓰는구나라는 생각뿐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종교계의 건축물에 대한 생각이 바뀌고 있다.
왜냐하면 그들이 일을 해서 버는 돈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별로 반가운 생각을 주진 않는다.
다만 역사와 유명세라는 관점이 전부일 뿐이다.
이 넓은 토지에 거대한 건물들이 자리잡고 있으며, 박물관까지 그리고 아직도 공사중인 것을 보고
이 곳의 규모를 어느정도 짐작할 수 있었다.
여기의 독특한 점이라고 할 수 있는 탑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탑은 홀로 방치되어 있는 느낌을 주었다.
다른 절들은 대웅전이나 주요 건물 앞에 탑이 세워져 있는데 반해서
이 곳의 탑은 홀로 동떨어져 있다.
벌판에 홀로 세상에 나와있는 것처럼 보인다.
어두운 분위기와 묘한 어울림을 자랑하고 있었다.
나는 탑에서 한동안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탑에게 한참을 빠져 셔터를 눌러댄 후 다시 여기저기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여기의 역사가 얼마나 깊은지는 인터넷을 찾아보면 될 것이다.
직접 방문해서 느껴본 분위기는 못해서 조선중기 이전 분위기가 느껴진다.
물론 그 시대를 살아본 것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절을 돌아다니면서 눈으로 익힌 것에 의한 기준이다.
내가 다니는 곳은 일반인들을 위한 길이 아닌지 사람들이 없다.
분위기는 스산하고 조용하고 음침함까지 느껴졌다.
지금껏 방문했던 곳과는 사뭇 다르다.
이전의 장소는 사람의 냄새가 짙어서 다른 향을 못맡았다고 하면
여기는 사람의 냄새를 얕아서 온통 산과 땅의 냄새뿐이었다.
두륜산의 대표적인 사찰이지만, 큰 유명세를 타지 못하는건지 이미 방문객들이 다 돌아간 건인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주변에 사람이 없어서 혼자 분위기 있는 사진을 만들기 위해 뛰어다녔다.
조금만 더 있으면 비가 올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한참을 걸어내려가야 차가 있는데, 지금 비가 오면 아무것도 못하고 카메라 때문에 힘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열심히 뛰어다니면서 시작을 절약하고자 했다.
하지만, 급한 성격 때문인지 칠칠치 못함 때문인지 생각보다 마음에 안드는 사진이 많았다.
태양은 저 편에서 뉘엿뉘엿 지는데, 빛은 분산이 되고 있었다.
각 건물마다 수행중인 곳이 많아서 사람들을 볼 수가 없었다.
이런 분위기 정말 싫어한다.
유럽으로 치면 고대의 성같은 곳에 흡혈귀가 튀어나올 듯한 분위기다.
물론 우리나라는 구미호가 나오겠지만.
각 건물안에 누군가는 있을 것인데, 인기척이 전혀 없다.
경전을 읽는 소리도 기침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가장 강렬한 이미지로 남은 것이 진한 고요함이다.
에스프레소처럼 본래의 절이 가지고 있는 멋을 그대로 보여주는 곳이다.
통도사, 구인사, 해인사, 직지사 등과도 전혀 다른 분위기다.
마치 낮은 이미 끝나버리고 밤이 되었으니 조용히 하라는 느낌이다.
봄이 시작되어서 그런지 공사중인 부분이 많았다.
한참 공사중인 곳에서는 포크레인이 맡은 일을 다하고 있었고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공사를 준비중인 곳은 그저 텅빈 공간만이 미래를 예지하고 있었다.
꽃이 피고 여름이 다가올 때쯤이면 여기도 엄청 붐비지 않을까?
해남의 높은 산 두륜산에 케이블카로 오르고 싶은 마음도 굴뚝이었으나,
시간관계상 오를 수가 없었다.
아마도 올랐으면 비에 흠뻑젖어 돌아왔을 것이다.
아직 봄이 멀리서 소리만 낼 뿐, 제대로 모습을 보이지 않아서 주변의 풍경도 아직은 황량하기만 하다.
푸른색은 많이 찾아볼 수 없었지만, 하늘에서 내려오고 있는 봄의 소리는 나를 설레게 한다.
사찰 옆으로 계곡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 계곡을 기점으로 반대편에서 여러 채의 건물이 있었다.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이 곳을 먼저 방문하는 것 같았다.
걸음을 옮겨서 계곡을 보니 한자락 풍경화를 보는 것 같았다.
돌담으로 이루어진 벽자락은 역사의 깊이를 표현해주었다.
사람들이 다리를 건너 연등이 걸린 건물로 들어갔다.
그 곳엔 덕을 쌓게 해주는 기구가 있었다.
시주를 하고 그 기구를 돌리면 자신의 공덕이 쌓인다는 것이다.
나는 이러한 사상에 큰 거부감이 든다.
마치 유럽의 중세시대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던 면죄부와 비슷한 느낌이다.
돈으로 자신의 공덕을 채울 수 있는 부자들만을 위한 방편처럼 느껴진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저 기구를 돌리는 것만으로 자신의 공덕이 쌓인다니
무덤에 계신 석가가 대노할 일이 아닌가.
불교의 시작인 석가로부터 수많은 파와 계열로 나뉘어져 전 세계에 퍼졌다.
근본은 하나인데, 머리는 수백 수천개다.
각기 주장하는 바가 다르고 유명세에 따라서 절간이 기운다.
아이러니하지만, 그게 세속에 빠진 종교가 아닐까 한다.
세계의 모든 종교가 이미 순수함을 잃어버리고 세속의 진흙탕을 뒹굴고 있다.
두륜산의 유명한 것 세 가지 중에 두 가지를 보았다.
케이블카를 타고 정상에 오르지 못한 것이 너무 아쉽지만,
그래도 유선관과 대흥사의 멋을 보고 즐기기엔 충분한 시간이었다.
대흥사는 오랜 역사와 고풍을 자랑한다.
고요함과 정숙함을 즐기고
상징적인 멋을 갖고 있는 아름다운 사찰이다.
해남 방문만 해도 서너번째다.
그래도 아직 다 못가본 곳이 있는 것을 보니
많은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는 곳 같다.
대한민국 육지 최남단을 가지고 있으며, 대흥사, 유선관과 같이 역사의 멋을 가지고 있으며,
매화와 같이 아름다움 또한 빛을 발하고 있는 곳이다.
밝고 따뜻하고 아늑한 분위기를 자랑하는 이 곳을 난 아직도 더 여행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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